마리 오드 뮈라이유 지음 | 이선한 옮김 | 국판 (148*210) | 280쪽 | 값 14,000원 | 발행일 2022년 10월 06일 | 펴낸곳 바람의아이들 | ISBN 979-11-6210-194-0 [44800] | SET ISBN 978-89-90878-04-5
오, 보이!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에 빛나는 마리 오드 뮈라이유의 대표작!
★프랑스 청소년이 열광한 스테디셀러, 30여개 부문 수상작품
★현직 중고등 교사들의 강력한 추천작!
이 책이 한 그릇의 음식이라면 주재료는 웃음과 눈물이 아닐까. 『오, 보이!』는 ‘단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슬픔에 빠진 이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_서현숙 (삼척여고 교사, 『소년을 읽다』 저자)
뮈라이유만큼 심각한 주제를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잘 풀어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읽는 동안 웃음이 끊이지 않고, 아이들과 나눌 거리도 많은 책이라 더욱 반가웠다. _김윤희 (상현중 수석교사)
아빠는 집 떠난 지 오래고, 엄마는 주방세제를 마셨다
모를르방 삼 남매는 과연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부모를 잃은 고아나 세상 천지에 돌봐줄 이 하나 없는 외톨이는 문학의 단골 주인공이다. 문학은 언제나 결핍이나 상실을 지닌 인물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왔으며, 고아야말로 딱 맞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집 없는 아이>에서 어린이 주인공이 고생 끝에 진짜 부모를 만나 끌어안을 때 우리는 기적을 만난 듯 감격스러워지곤 한다. 세상 모든 가여운 아이들에게 축복이 내려지길! 그러나 모든 고아들에게 돈 많은 귀족 부모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세상에는 고아가 아니라도 궁지에 몰린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비극은 도처에 존재하고, 특히나 어린아이들이 너무나 일찍 맞닥뜨린 비극은 말문을 잃게 한다. 기적이 아니라면 이런 아이들에게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을까.
마리 오드 뮈라이유의 『오, 보이!』는 엄마의 자살 이후 오갈 데 없어진 모를르방 삼 남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빠는 진작 소식이 끊긴 지 오래고 아마도 엄마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비참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열네 살 시메옹, 여덟 살 모르간, 다섯 살 브니즈는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아무도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어!” 비장하게 손을 모아 맹세해 보지만 어린 남매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야기는 모를르방 삼 남매뿐 아니라 후견인 지정 판사, 사회복지사, 보육원 원장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어른들이 고심하는 모습까지 두루 살핀다. 삼남매가 헤어지지 않고 보호와 양육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시메옹은 열네 살에 고등학교에서 입시 준비를 하고 있을 만큼 머리가 좋은 천재 소년이다. 시메옹이 찾아낸 해결책은 바로 이복형제들이다. 지금은 생사도 알 수 없지만 가족을 떠난 아빠에게 이전 결혼에서 낳은 자식들이 있다면? 이미 성인이 된 이복형제가 모를르방 삼 남매의 후견인이 되어 줄 수는 없을까? 아빠에게는 안과 의사가 된 삼십대 의붓딸과 이십대 아들이 있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가족 관계지만 모두 모를르방이라는 성씨를 공유하고 있다. 판사가 조지안 모를르방과 바르텔레미 모를르방을 즉각 소환하면서 삼남매는 새로운 기대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이전까지 존재 자체도 몰랐던 의붓동생들을 기꺼이 받아줄까? 시메옹과 모르간, 브니즈가 다시 한 번 버림받고 상처 입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면
『오, 보이!』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삼남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뻔한 길을 택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어느 하나 단순하지 않고 모두 입체적인 성격과 복잡한 사정을 갖고 있는 덕분이다. 부유한 안과 의사 조지안은 실제 혈연관계도 없는 아이들을 귀찮은 법적 사무 정도로 생각하지만 막내 브니즈를 보는 순간 홀딱 반해 버린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조지안이 브니즈를 입양해서 키울 수 있다면? 한편, 성소수자인 바르텔레미는 자기 한몸 건사하기도 어려울 만큼 철딱서니 없고 현실 감각이 없는 인물이다. 마지못해 동생들을 돌보기 시작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메옹이 백혈병 진단까지 받는다. 성소수자 페스티벌 참가나 인터넷 게임 말고는 그 무엇도 열심히 해 본 적이 없는 게이 청년이 어린 동생들을 후견하고 아픈 남동생을 돌보는 일이 가능하기는 할까? 이쯤 되면 당장 두 손 두 발 들고 물러나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이야기는 후견인 자격을 둘러싼 조지안과 바르텔레미의 신경전과, 병원에 입원한 시메옹의 백혈병 투병기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중심인물은 당연 바르텔레미다. 애인에게 동생들이 이웃집 아이들이라고 거짓말을 하거나 주삿바늘을 보고 시메옹보다 먼저 기절해 버리는 바르텔레미는 확실히 믿음직스러운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걸핏하면 애교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배다른 누나 조지안을 이겨먹으려고 억지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 성인으로서 기본적인 책임감과 사회성을 지닌 인물인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바르텔레미는 모든 상황에 솔직하고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다하는 인물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동생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애정과 책임감을 느끼고, 부족하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시메옹이 감추고 있던 백혈병 증상을 발견한 것도, 시메옹이 투병생활을 하면서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는 것도, 동생들의 상처와 외로움을 어루만져 주는 것도 다 바르텔레미의 몫이다. 심지어 바르텔레미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이웃집 여자 에메를 구해내기까지 한다. 모를르방 삼남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따뜻한 돌봄이었다면 바르텔레미야말로 진짜 돌봄이 가능한 진정한 어른이었던 셈이다. “오, 보이!(Oh, boy!)”는 바르텔레미가 습관적으로 내뱉는 감탄사다. 뮈라이유가 미국 코미디에서 착안했다고 밝힌 이 감탄사는, 이상함, 감탄, 경멸 등의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모든 감정을 B급 감성으로 표현한 것으로 남자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재미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바르텔레미의 철딱서니 없고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드러내주는 언어 습관이지만 ‘보이’가 가리키는 바는 분명하다. 게이로서, 혹은 별볼일 없는 청년으로서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을 갖고 있던 바르텔레미는 동생들을 만나면서부터 진짜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반면, 슬픔과 부담에 짓눌려 너무 일찍 커 버린 시메옹은 바르텔레미 앞에서 진짜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결국 『오, 보이!』는 두 소년이 만나 서로를 돌보고 구원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작품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작가인 마리 오드 뮈라이유의 대표작으로, 고아, 배다른 형제들, 성소수자, 백혈병 환자, 가정폭력 피해자 등 온갖 복잡한 문젯거리가 잔뜩 등장하지만 작품 분위기는 놀랍게도 유머러스하며 말할 수 없이 따뜻하다. 비극이란 도처에 존재하고 누구도 삶의 무게를 피할 수 없겠지만 우리에게 가족이 있다면, 누군가 돌봐줄 사람이 있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과 돌봄이 존재한다면 그래도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오, 보이!』의 결말에 이르면 여러 의미에서 사랑이 넘실거린다. 이러한 사랑이 기적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촘촘하고 예측 불허인 서사와 개성 넘치는 인물,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충만한 결말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넉넉히 권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