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거지 소녀

국판 (148*210mm) ㅣ 96쪽 ㅣ 값 7,800원 ㅣ 바람의아이들 펴냄

ISBN 978-89-94475-12-7 ㅣ2011년 3월 30일

거지 소녀

  • 너무나 흔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이야기

     

    한 소녀가 있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소녀. 다른 아이들한테는 다 있는데 소녀한테는 없는 게 너무나 많다. 아빠, 단짝 여자친구, 전 과목 학원비, 치마 안에 입을 레깅스, 도서관 대출증……. 대신 다른 아이들한테는 없는데 소녀한테만 있는 것들도 많다. 우울증에 걸린 엄마, 가출한 언니, 부끄럼 타는 병, 따돌림을 당할 때 취해야 할 태도 같은 것들. 물론, 무척이나 흔한 이야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 흔하기 때문이다.

    『거지 소녀』의 해민이는 모든 가난한 여자애들이 그렇듯 아쉬운 게 많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학원에 다니지는 못해도 공짜인 ‘은행나무 공부방’에 다닐 수 있으니까. 해민이 언니 해주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그림을 배울 수도 없고 매일 광고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어깨가 아프지만 큰 불만은 없다. 하긴, 불만이 있다 한들 해결 방법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은행나무 공부방을 찾아온 방송국 사람들이 언니에게 묻는다. 미술학원도 가고 개인 레슨도 받고 싶겠네요? 대학에 갈 건가요? 집안 사정 때문에 힘들죠? 마침내 언니는 울음을 터뜨리고, 중3짜리 가난한 여자애의 슬픈 얼굴은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어 방송에 나간다.

    그때부터 모든 게 틀어지기 시작한다. 얼굴 없는 후원자, 매달 들어오는 후원금, 한몫 벌어보려는 엄마, 상처 입은 언니. 급기야 엄마가 다시 술을 마시고, 꾀병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자 언니는 가출을 하고 만다. 언니가 떠난 뒤, 후원자가 찾아와 공부방 선생님에게 말한다. “어렸을 적 제 꿈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거였어요. 이젠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진절머리가 나요. 아름다운 꿈 같은 건 이루어지지 않나 봐요.” 정말 아름다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아름다운 꿈 같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정말 아름다운 꿈, 자존심

     

    언니가 떠난 뒤, 해민이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어 우왕좌왕한다. 후원자의 아름다운 꿈을 망쳐 버린 언니, 언니는 왜 후원금을 거절하고 도망쳐버렸을까? 해민이는 언니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걱정하고 그리워한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했던 일들을 하나둘 되새기던 중 차츰 언니를 이해하게 된다. 언니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꿈과 자존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도. 그래서 마침내 언니가 있는 곳을 알아낸 다음에도 해민이는 그냥 언니를 기다리기로 한다. 언니가 자존심이란 놈을 찾아올 때까지, 언젠가 그 자존심을 확실히 안고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거지 소녀』는 실제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작가가 오랫동안 아이들과 생활하며 마음속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품이다. 그러니까 『거지 소녀』의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아닐지언정 실제 아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현재, 저소득층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양육을 내세우며 세워진 공부방은 전국적으로 3,274개소이며, 이용 아동수는 94,406명에 이른다(2009년 6월,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조사). 요즘 아이들에게 ‘학원’이 학교만큼이나 중요한 생활 공간이라면, 학원 다닐 돈이 없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는 공부방이 그보다 훨씬 더 절실하게 중요할 터, 그 아이들은 공부방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일까?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10년이 흐른 지금,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의 사정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아니, 그보다 공부방에 다니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열여섯 살짜리 여자아이한테서 부득이 눈물을 이끌어내는 방송국 사람들이나 자신의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진절머리를 내는 사람들과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하지만 어쩌면 문제는 다른 데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란 없다는 것.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과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구분이 없다는 것. 그러니까 거만하게 ‘아름다운 꿈’ 운운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될 것이라는 것. 해민이에게 “해민이 넌 좋은 아이야. 해민이는 크면 더 좋아질 거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지혜 엄마처럼.

    첫 책을 내는 작가는 『거지 소녀』를 두고 “이 글은 내 두 번째 이야기인데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참 못 썼다”고 고백하며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내 이야기가 별 볼일 없다고 해서 공부방 아이들까지 별 볼일 없지는 않다는 사실 말이다. 내 이야기와는 다르게 공부방 아이들은 참 즐거운 아이들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틀렸다. 『거지 소녀』는 별 볼일 없는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일정 수준의 문학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여기에 담긴 진정성이 근래 보기 드문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군가의 진심을 두고 그 누가 별 볼일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bottom of page